어머니가 집에 돌아와 누군가 자신을 똑바로 쳐다봐서 불쾌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꼭 불쾌하기만 한 일일까?”라고 답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 호기심과 상대가 느끼는 불편은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에게는 눈이 마주치면 먼저 피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당시 WPI의 한 유형 설명을 읽고 이것을 ‘학습된 회피’라고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그 설명만으로 버릇의 원인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가 사람을 바라보고 싶어 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그 시선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서로를 못 본 듯 지나갑니다. 저는 그 거리를 두려움에 대한 존중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장막을 아주 잠깐 열어보고 싶었습니다. 키오 스타크의 《낯선 사람들이 만날 때》를 읽으며 조금 더 용기를 얻었고,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경계를 허문다는 말이 상대의 경계를 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규칙은 작아야 합니다. 눈이 자연스럽게 마주쳤을 때 한 번 인사합니다. 상대가 시선을 피하거나 답하지 않으면 미소만 남기고 지나갑니다. 대화를 이어가려는 신호가 있을 때만 날씨 같은 가벼운 말을 건넵니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참 포근하네요.”
잘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 반응을 실패로 여기지 않으려 합니다. 관심은 다가가는 힘만이 아니라 물러나는 감각도 필요하니까요.
경계를 모두 없애려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열 수 있는 만큼만 열리는 순간을 만들어보려 합니다. 덕분에 미소 짓는 연습도 하게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