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참고한 교육심리학 용어사전은 창의성을 새롭고 독창적이며 유용한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으로 설명했다. 이 정의는 결과를 평가할 때 도움이 된다. 그러나 막상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다른 질문이 남는다. 만들기 전에는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
처음에는 새로움·독창성·유용성을 하나의 집합처럼 놓았다. 셋 가운데 하나만 있으면 창의적이라 부를 수 있는지, 셋이 모두 필요하지 않은지에 대한 엄밀한 기준은 세우지 못했다. 지금은 세 단어를 판정 공식으로 쓰기보다 서로 다른 질문으로 나누는 편이 낫다. 이전과 무엇이 다른가. 만든 사람의 고유한 선택이 보이는가. 누군가의 목적에 실제로 쓰이는가.
새로움과 유용성은 결과가 나온 뒤 다른 사람이 판단하는 면이 크다. 그렇다고 만드는 과정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창작자는 새로울 가능성과 쓸모를 예상하며 선택할 수 있다. 다만 그 평가를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
과정에서 직접 다룰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자기 특성이다. 무엇을 오래 보았는지, 어떤 불편에 민감한지,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어떤 방법을 자주 택하는지가 선택에 스며든다.
나는 독창성의 영어 단어인 originality를 original과 origin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창작의 근원을 사람에게서 찾으려 했다. 이 어원 풀이만으로 독창성의 본질을 증명할 수는 없다. 그래도 ‘어디에서 이 선택이 시작되었는가’라는 질문은 남길 만하다. 남의 형식을 그대로 따른 선택인지, 자기 경험과 관찰에서 나온 선택인지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같은 나무를 여러 사람이 그려도 그림은 달라진다. 사람마다 본 각도와 기억, 손의 습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구름을 보고 쓴 문장도 같을 수 없다. 그러나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모두 창의적이라고 판정할 수는 없다. 차이는 창작의 재료이고, 새로움과 유용성은 결과를 보고 다시 판단할 문제다.
환경도 빠뜨릴 수 없다. 처음에는 비교를 단순하게 하려고 창작자들이 거의 같은 세상을 본다고 가정했다. 하지만 사용할 수 있는 재료, 배운 기술, 문화와 자원, 요구받은 제약이 다르면 결과도 달라진다. 사람의 특성만 강조하면 환경이 열거나 닫은 가능성을 개인의 능력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 다음 식을 썼다.
사람의 특성 × 세상 = 창의적인 무엇
지금은 이 식을 보장 공식보다 관찰 틀로 읽는다. 세상에는 문화와 자원, 기술과 제약의 차이가 있고, 사람의 특성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둘의 만남이 고유한 선택을 만들 수 있지만, 결과의 창의성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자기 특성을 창작에서 확인하는 작은 실험을 할 수 있다. 같은 과제를 두 번 해 본다. 한 번은 익숙한 방식으로, 다른 한 번은 자신의 경험이나 오래 가진 관심을 의식적으로 반영한다. 그리고 두 결과에서 달라진 선택을 적는다.
무엇을 더하고 뺐는가. 어떤 순서를 바꿨는가. 그 선택은 내 어떤 경험이나 민감함에서 나왔는가.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준 뒤에는 내가 의도한 차이가 실제로 보였는지도 묻는다.
그다음 새로움과 유용성을 사후에만 묻지 말고 과정으로 되가져온다. 누가 이 결과를 이전과 다르다고 느꼈는가. 누가 어디에서 쓸 수 있었는가. 예상한 쓰임과 실제 쓰임이 다르면 다음 시도에서 무엇을 바꿀 것인가. 결과의 평가는 다음 창작의 재료가 된다.
창의성은 자기다움만 외친다고 생기지 않는다. 세상을 관찰하고, 자기 특성이 만든 선택을 구현하고, 결과를 다른 사람의 평가와 사용 속에서 다시 봐야 한다.
사람의 특성은 창의적인 결과의 증명서가 아니다. 그러나 빈 화면 앞에서 남과 다른 질문을 고르고, 같은 재료를 다른 관계로 놓게 하는 중요한 출발점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