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비상하기 위해서는 상처와 고통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비상하기 위해서는 상처와 고통을 인정해야 한다.

Photo by Austin Schmid on Unsplash

다양성이다.

성격은 ‘특성’ 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장점은 곧 단점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장점이 있다면 그것 때문에 생기는 단점이 있는 법이고, 장점이 크다면 단점도 큰 법이기 때문에 그렇게 조언했다.

사람들의 성격을 이해하면서, 사람들은 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다시 인정한게 살면서 남에게 상처주지 않거나 상처를 받지 않고 사는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왜냐면 각기 다른 가치관과 기질을 가지고 있으니 각기 다른 판단을 하기 때문이고, 성격이 비슷해도 결국은 뭔가에서 어긋 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민한’ 사람들을 보자 Bigfive 에서는 신경성이 높은 사람들일 것이고, WPI 에서는 로멘티스트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은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과 머리와 심장이 다르다. 움직이고 판단하는 머리와 심장이 상반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 사람들 끼리는 서로 다른 점들이 부딛힐 수밖에 없다.

다양성이다. 이들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서로 다르다는걸 이해하고 느껴야 한다. 그때에서야 서로를 인정할 수 있게 된다. 때문에 나는 ‘성격’에 대한 과목이 적어도 고등학교에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 지적 수준이면 생활에 필요한 기초는 소화 할 수 있다.

다양성에 대한 인정은 우리의 존재를 증명한다.
다양성에 대한 인정은 우리의 존재를 증명한다.

Photo by Beata Ratuszniak on Unsplash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럼 지금 말하는 나와 다른 사람의 차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나와 다른 사람의 차이를 알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 해야 한다.

  1. 나를 인정해야 한다.(나를 이해하고, 나를 느껴야 한다)
  2. 남을 인정해야 한다.(남을 이해하고, 남을 느껴야 한다)
  3. 나와 남을 인정해야 한다. (남과 나를 이해하고, 나와 남을 느껴야 한다)

<하나와 둘>

일단 각기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유용한 도구가 성격 심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BigFive 와 WPI 를 추천하지만, MBTI, MMPI 등도 좋은 도구라고 생각한다. 성격을 이해하고 성격 검사등으로 자신과 남의 차이를 인지하다 보면 왜 나와 남이 충돌하는지, 왜 내가 남을 이해 못했는지 파악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내 성격이 하나의 ‘성질’ ‘특성’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며 장점과 단점은 원래 하나라는 것도 깨우칠 수 있다. 사람들이 장점과 단점이 하나라고 하니까 “아 나는 단점이 없어” 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건 그런 말이 아니다. 이건, “나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있으면 내가 부족한 점도 있는 것이며, 내가 있으면 내가 아름다운 점도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다양성일 인정하면, 다음과 같은 생각에 이르게 된다.

내가 아름답다면 동시에 나는 추하다.
우리가 아름답다면 동시에 우리는 추하다.

위와 같은 생각에 이르게 되면 아름다움은 늘리고, 추함은 줄이고 싶어하고 실제로 노력 하려 할 것이다. 그러다 다시 ‘완벽한 나는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질 것이고… 결국 다시 다양성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셋>

나와 남을 인정한다는 것은 나와 내가 각기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만약 나와 남을 인정했다면 당신은 다음과 같은 생각에 이르게 된다.

나는 다른 사람과 충돌 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여튼, 예를 들어서 그렇게 해서 내가 “OO한” 사람이라고 해보자. 내가 OO 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생각이 다른 지점이 생긴다. 그렇게 되면 남과 충돌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이런 충돌을 피하고 싶어한다.

상처를 인정하라. 상처가 삶을 만든다. 상처는 내가 살아있다는 흔적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충돌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한다. 스트레스 받는 상황은 부정적인 상황이며 많은 사람들은 이걸 ‘부정’ 하고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스트레스 받는 상황은 분명 나를 위협하는 부정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부정적인 상황을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지혜로운 행동이 아니다. 사람이 계속 살아간다면 새로운 문제 상황을 계속해서 격게 된다.

문제를 인정하지 안는다면, 삶은 지옥이다.
문제를 인정하지 안는다면, 삶은 지옥이다.


Photo by Camila Quintero Franco on Unsplash

그런데 만약, 당신이 겪는 그 문제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문제는 당신을 영원히 괴롭히게 될 것이다.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문제를 ‘인정’해야 한다.

위와 같은 이유와 기타 등등의 이유로 나는 살아있다는 것은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내가 이 땅에 두발로 서 있다면 나는 피로함을 느껴야 한다. 가끔 영원과 같은 행복한 순간이 오지만, 그 순간은 짧고 좁다.

이 세상은 이질적인 것들이 모여 있는 집합이다. 인간과 지구는 서로 이질적이다. 아니 심지어 인간과 인간은 이질적이다. 모든 존재는 이질적이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차별성이 없다면 동일한 존재이지 않겠는가)

이질적임, 나와 남의 다름은 내개 상처가 된다. 하지만 동시에 남에게도 상처가 된다. 당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말만 하기 보다, 당신을 설명하는게 해결 방법이다. 당신을 남에게 이해하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이 나를 이해하게 하려면, 당신이 남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어리석은 아이 처럼 내 OO함이라는 특성을 방패막이로 삼지 말라. 상처 받기를 거부하지 말라. 상처를 인정하자. 상처는 삶을 만든다. 상처는 당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상처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고, 상처를 인정할때 우리는 함께 웃을 수 있게 된다.

상처를 인정할 때, 우리는 함께 웃을 수 있게 된다.
상처를 인정할 때, 우리는 함께 웃을 수 있게 된다.

Photo by Anthony Tran on Unsplash

More posts from thi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