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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logoEdward Cisneros

A라는 기질을 가진 사람은 A'라는 외부의 평가에 예민해진다. 따라서 그 평가가 잘 못 되었을 때, 그 평가가 다른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칠지 모르지만 A라는 기질을 가진 사람은 잘 못 되었다고 따질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간다.

하지만, 때로는 정상적인 맥락의 평가 A'를 부당한 맥락의 평가로 '오해'하기도 하는 확률도 따라서 상승한다. 그러니까 과민해지기 쉽다. 이건 그 기질과 환경이 구성한 맥락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상 서술한 내용에서 주체는 A라는 기질을 가진 사람밖에 없다. A라는 기질을 가진 사람은 외부의 부당한 평가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해왔고, 이런 반응의 관성이 형성되어서 부당하지 않은 평가도 부당하게 인식될 확률이 높아졌을 뿐이다.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고? 글쎄, 나는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는 질문이 그렇게 쓸모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책임은 A라는 기질을 가진 사람에게 있다고 본다.)

여기서 문제는, A라는 사람이 '오해'했을 경우 그걸 '오해' 했다고 지적해줘야 하는 것이냐는 문제가 생긴다.

  1. 단순히 SNS 친구에게는 피드백을 주지 않는다.
  2. 내가 그런 지적을 해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만 피드백한다.(공개적으로 피드백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피드백한다.)
  3. 나중에 일이 커지면 나의 의견을 밝힌다.
  4. 이 전체 흐름을 하나의 현상으로 이해한다. 누군가의 잘 잘 못을 따지지 않는다. 이건 그냥 인생의 해프닝일 뿐이다.

오늘의 결론.

  • 나는 내가 어떤 A라는 사건을 '오해'하고 있는 경우, 과민할 때, 용감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드백해주실 분들과 얼마나 관계하고 있을까? - 부디, 많았으면 좋겠다. -
  • 컨텐츠 생산자보다, 컨텐츠 소비자가 '대화'의 관점에서 더 중요한 열쇠와 책임을 가지고 있다.
  • 컨텐츠 소비자가 자신의 관성을 인지하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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